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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1일 편집국장 임명
편집장  2015-10-20 06:44:40, 조회 : 931, 추천 : 327
- Download #1 : 2011_05_10_099.jpg (113.1 KB), Download : 52


장소: 보림사 법당
촬영: Brian Rim


2001년까지 종이신문으로 발행되던 미주불교신문이 다시 활동할 것을 결의하고 이사장 경암스님은 이종권을 편집국장으로 임명하였다. 미주불교신문 Season 2의 시작이다.

오른쪽은 상좌 해인스님. 경암스님을 이사장으로 하여 버지니아 비영리단체 The Korean Buddhist News, USA를 복원하고 이종권과 해인스님을 이사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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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이날 행사를 마치고 편집장의 다음카페에 이날의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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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겨울, 그러니까 8년전 일입니다. 워싱턴 보림사 주지이신 경암스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워싱턴에 한번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긴한 용건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뉴욕 불교계에 데뷰한 때가 2003년 봄이었고 당시 내가 만들고 있던 뉴욕불교 잡지일로 그 해 가을에 몇차례 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초청을 받고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워싱턴에 갔습니다. 워싱턴에 갔더니 스님 세 분이 역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경암스님, 그리고 현 원등사 주지이신 법해스님, 그리고 경암스님의 상좌이신 해인스님...

점심을 먹고 절에 가니 스님께서 본론을 말씀하셨습니다. 미주불교신문을 당신께서 10년간 만드셨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꼭 필요한 불사인 만큼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 일을 "이거사"가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요지였습니다. 당시 저는 뉴욕사원연합회 소속으로 사원연합회에서 발행하는 뉴욕불교 편집장으로서 뉴욕불교 제작에 혼신을 다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해서 저는 정중하게 사양하였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그렇게 제 능력을 높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헌데 지금은 뉴욕불교를 제작하는 데 제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이것의 성패에 저의 많은 것들이 걸려 있는 만큼 일단 뉴욕불교를 궤도에 올려놓고 스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겠습니다. 경암스님 역시 저의 완곡한 사양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그렇다면 이거사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차비 하라며 거금 600불을 쥐어 주셨습니다.

일년 후, 2004년 겨울 뉴욕불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문을 닫게 된 까닭은 굉장히 많은 각도에서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때의 실패로 인하여 직업 불교인으로서 불교일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크게 배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에 와서 얘기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고 글쓰고 편집만 해봤던 사람으로서 이국땅에서의 삶을 어떻게 생존해 내야 좋을지 몰랐던 막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각설하고) 그때 원각사에 정우스님께서 주지로 취임하시고 당시 정우스님을 미국에서 보필하였던 지광스님께서 나를 정우스님께 천거하여 원각사 사무국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민 절차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변화입니다.) 이때 경암스님께서도 정우스님이 저와 함께 일하고자 하셨던 이상 당신도 제가 정우스님을 먼저 도와야 한다고 하시며 원각사에서 일 잘 하고 영주권 받아오면 그때 신문을 시작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008년 영주권이 나왔습니다. 경암스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크게 기뻐하시며 나의 생환(?)을 반겨주셨습니다. 물론 원각사에 적을 두고 있는 동안에도 몇 차례 보림사로 스님께 인사드리러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스님께선 반겨주시며 밖에 나가 밥을 사주셨습니다. 참 어려웠던 시절 그렇게 격려해주시고 반겨주신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 반드시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스님의 뜻을 이어 불교신문을 만들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하였습니다.

2011년. 영주권을 따고도 3년이 지났지만 신문이란 것이 워낙 큰 사업이라 함부로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스님 역시 최근들어 재정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고 계신 것이 역력하였습니다. 해서...만일 스님께서 재정적 여건을 마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꼭...한다, 하되 스님과 함께 한다 라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의리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오랜동안의 공적을 내신 분을 모시고 그 뜻과 노하우을 이어가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불교신문을 반드시 성공시켜 스님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또 그 신문을 통해 많은 불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자...하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그렇다면 갈길은 명확했습니다. 만의하나 경암스님이 재정적 여건을 마련하지 못하신다 해도 그 여건을 내가 마련한 후 스님을 모시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해서 불교신문을 아무런 도움 없이도 발간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달마붐입니다.

지난 3년간 달마붐 사업 열심히 했습니다. 월간 불광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불교서점이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습니다. 불교용품의 매출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주한국불교 총람 및 불교인 업소록을 위한 총무원의 지원금이 나온 것이 바로 이 즈음입니다.

나는 이 사업이야말로 불교신문의 미주발행을 경제적, 인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결정적인 사업으로 생각하고 2006년부터 조용히 준비해온 사업입니다. 총무원에서 나에게 위탁했던 2009 해외사찰 현황조사도 이 카페를 통해 조용히 진행해 왔던 총람 작업에 영향을 받은 프로젝트였습니다. 해외사찰 현황조사를 완수한 후 미주사찰 디렉토리 업무에 대한 자격이 만들어졌고...그 여세를 몰아 2011년 보림사의 명의를 빌어 종단의 해외포교 지원사업에 공모하여 사업자로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초파일 법회에서 경암스님은 나에게 사회를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공지사항 시간을 통해 나를 미주불교신문사의 편집국장으로 위촉하였음을 공표하셨습니다. 드디어 경암스님과 저의 인연이 공식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날 오전 은행 일, 비영리단체 껀 등 몇가지 업무를 의논한 후 경암스님께서 점심을 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랜 동안 꿈 꿔왔던 일들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드디어 마련되었다는 사실에 경암스님도 기분이 좋으셨던 것입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가 말했습니다. "스님, 오늘같은 날이 왔다는 게 꿈만 같습니다."

"이법사가 그 험한 세월을 씹어 먹었던 게야. 앞으로 잘 해봐."

어떤 약속은 지키는 데 참 오래도 걸립니다. 하지만 아직도 약속을 지킨 것이 아닙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발판 하나를 마련한 것 뿐.  

출처: http://cafe.daum.net/dharmaboom/H4ES/146
2011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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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1
08: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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